사람이 위기 상황에 처하면 그 사람의 본 모습이 나오는 것 같다.
유다의 요아스왕은 여호야다의 보호 아래 야달랴 왕비를 피해 성전에 숨겨 키운 왕이다.
그런데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의 밑바닥이 드러난다.
24:15 여호야다가 나이가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 때에 백삼십 세라
24:16 무리가 다윗 성 여러 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
24:17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24:18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왕으로 옹립하고 많은 개혁을 요아스를 도와 이룬다.
성전을 수리하고 바알 아세라 제단을 허물고 우상의 형상들을 깨트리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것을 인정해 그가 130세 나이로 죽자 왕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다윗 성 여러 왕의 묘실 중에 장사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전에 대하여 선을 행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의 죽음은 요아스왕에게도 위기였지만 백성들에게도 위기였다.
그 시대를 같이 살지 않았지만 바로 이어 나오는 17절과 18절로 볼 때 성전 수리와 개혁들은
요아스의 공이 아니라 여호야다의 공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유다 방백들이 찾아와서 다시 우상을 섬기자고 하니 즉시 시행하는 걸 보면
백성들도 여호야다의 죽음을 위기로 느꼈고 요아스는 신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것 같다.
백성들과 유다 방백들이 생각한 것이 맞았다.
요아스는 믿음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왕이 다 명령하고 이룬 것 같지만 그 뒤엔 언제나 여호야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기에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이다.
나도 생각해 보면 이런 경험이 종종 있었고
지체들 관계에서도 종종 보게 된다.
물론 여호야다처럼 믿음의 사람의 영향력으로 일이 이루어지는 걸 보며 하나님을 만나고
믿음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때도 있지만
이런 경험은 내 것이 아니라 생명력이 짧고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신앙은 개인의 체험이지 모방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위기의 상황에 무엇이 믿음인지 어떤 태도가 믿음의 사람이 보일 수 있는 태도 인지 완전히 드러나게 되어있다.
나는 가장 바닥에 내려갔다는 생각이 들 때 가장 먼저 고민한 부분이 믿음이 무엇인가!였다.
이제서야 해답을 찾았다.
믿음은 위기에 빛을 발하는 것이고 위기 상황에 생명줄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 행하심 안에 굳건히 서 있는 것이다.
나는 최근에 비로소 만약 아프기 전에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확실히 할 수 있었다.
나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다이다.
이런 마음이 든다면 자신을 든든히 지켜주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아는 상태가 된다.
그러면 요아스같은 결정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이고 믿음의 가진 사람이 취할 태도이다.
비로소 나름 믿음의 사람으로 서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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