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인간의 전지적 참견 시점이 다르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말씀을 발견하게 하셨다.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하고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고 포로기를 거쳐
다시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모으시고 회복시켜 주신다.
구경거리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는 이방인들의 전지적 참견 시점과 하나님의 전지적 참견 시점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지적 참견 시점이 있다.
한 사건이 이렇듯 3시점으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
나는 나의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전지적 참견 시점으로 보는 눈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4:11 이제 많은 이방 사람들이 모여서 너를 치며 이르기를 시온이 더럽게 되며
그것을 우리 눈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노라 하거니와
4:12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하며 그의 계획을 깨닫지 못한 것이라
여호와께서 곡식 단을 타작 마당에 모음 같이 그들을 모으셨나니
미가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6절과 같이 쫓겨난 자가 되고 환난 받을 것이며
발을 절게 될 것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전쟁에 패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많은 고초를 겪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모아 강한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손에 의해 포로가 되고 남유다는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이나
그들의 손에서 속량하시고 다시 시온의 딸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이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이방신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났기에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될 거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경거리가 되는 것으로 결론을 짓지 않으시겠다는 말씀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지적 참견 시점은 그 일로 통해 알곡 거두어 다시 시온의 딸로 삼으시기 위해 포로로 잡혀가는 고난을 지나가게 하시고
남은 자를 거두어 예루살렘에 모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시고 영원까지 다스리길 원하신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전지적 참견 시점을 보는 눈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극복할 수 없는 문제 앞에 절망하고 또 실패 앞에 조롱거리 가 된 자신들을 보며 치욕을 느끼고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해 심판이 마땅하다는 걸 알며 이젠 끝이라고 포기하게 되는 순간이
하나님은 이때가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실 때이니 일어니 치라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전지적 참견 시점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전지적 참견 시점으로 보면 우리가 칠 때이고 네 뿔이 무쇠가 되는 순간이고 네 굽이 놋 같게 되어 깨뜨릴 순간이 온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묵상하며 나의 눈에는 질 싸움이고 사방이 막혀있어 절망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의 전지적 참견 시점은 이 사건을 통해 곡식단을 모아 알곡을 걷어 들이는 절호의 찬스, 하나님의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항상 나의 전지적 참견 시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지적 참견 시점으로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보니 나는 늘 나의 생각으로 일을 추진하고 결정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래서 오늘 말씀처럼 이방인의 시점을 일단 지워버리기로 했다.
그러면 두려움을 피할 수 있는 단계가 되고
그다음 나를 지우고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그런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모든 과정이 한순간에 되진 않겠지만 이 말씀을 토대로 이미지화해 항상 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돕는 말씀 묵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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