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의 말씀 묵상

마태복음 11장에서 15장 묵상

차작가 2023. 10. 3. 11:10

오늘은 11장에서 15장까지 묵상했다.

그중에서 13장을 나누고 싶다.

13장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씨 뿌리는 비유가 있다.

이것은 천국에 관한 비밀을 설명하시기 위해 비유로 말씀하신 주님의 설교이다.

예수님에게 제자들이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지 묻자

예수님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라고 말씀하신다.

즉, 천국이란 비밀스러운 말씀인데 허락되는 사람이 있고 그 비밀이 허락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허락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깨닫지도 깨달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천국의 비밀이란 허락된 자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셔도 깨달을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천국이란 허락되지 않은 자에게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므로 ....

이사야의 예언과 같이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라는 말씀이 이루어 짐을 말씀하신다.

그들은 마음이 완악하고 귀가 둔하고 눈을 감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마음이 완악해서 스스로 그 말씀을 깨닫기 원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들은 왜 마음이 완악하고 깨닫기 원하지 않을까?

놀랍게도 그들은 예수님께 고침 받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은 스스로 틀림을 인정하는 것이기에 받아들이는것 자체가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을 닫은 것이다.

그러나 천국의 비밀을 깨닫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다.

왜냐면 그동안 많은 선지자와 의인들이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그들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천국의 비밀을 깨닫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천국을 다시 한번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의 그 당시 파종법은 나귀 등에 구멍 뚫린 씨앗 자루를 싣고 돌아다니게 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여기서 말하는 씨는 "말씀"을 뜻한다.

그리고 밭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밭이 아닌 길가이고

두 번째는 돌 밭이고

세 번째는 가시떨기가 있는 땅이고

네 번째는 옥토에 해당되는 좋은 땅이다.

보통 우리는 밭을 개간하고 줄에 맞추어 씨를 뿌려서 흙을 돋우는데

이스라엘은 경작지가 부족해서 척박한 땅에 밭을 일구는 환경이었다.

한 번씩 비가 오면 그나마 작은 땅도 흙이 씻겨 나가기 때문에

그 흙을 보호하기 위해 밭에 있는 돌멩이들로 담을 낮게 만들어 흙을 보호했다.

그래서 밭이라는 경계가 정확하지 않았다.

농작물이 심기기 전에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가 되기도 했기에 그곳에는 농작물을 심어도 자라기가 힘든 환경이었으므로

나귀를 사용해서 씨앗을 흘리다 보면 때로는 돌밭 위에 뿌려지기도 하고 길가에 뿌려지기도 하고

광야에 흔히 볼 수 있는 가시떨기나무에 뿌려지기도 하고 그나마 좋은 옥토에 뿌려지기도 했다.

그러고 난 다음에 밭을 개간하는 방법으로 농작물을 키웠다.

그러다 보니 길가에는 사람들이 밝고 지나가서 자연스럽게 길이 만들어져서 농작물이 자랄 수 없었고

돌밭에서는 당연히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가시떨기 밑에서는 씨앗이 자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옥토에 뿌려진 것은 많은 결실을 맺는 것이다.

이런 이스라엘의 파종법을 이해하면 이 비유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기가 쉽다.

하나님은 우리의 농부이시다.

하나님이 말씀을 뿌려 주실 때 옥토에 뿌려진 씨는 결실을 맺는 것처럼

좋은 마음 밭에 뿌려진 말씀은 성숙해지도록 만들어 주신다.

말씀은 변하지 않는다.

즉 길 가던 돌 밭이든 가시떨기든 좋은 땅이든 똑같은 말씀이 뿌려진다.

때로는 우리의 마음 밭이 길가나 돌 밭이나 가시떨기 밭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좋은 땅이 되도록 우리의 심령을 기경하신다.

호세아서 10장 12절에 보면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기경하도록 내어 드릴 필요성이 있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 보면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라는 말씀도 있다.

우리의 영적 상태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항상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어떤 땅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잠시 은혜받고 금방 잊어버리고 기쁨이 사라진다면 돌밭에 뿌려진 말씀과 같이 내 마음이 돌밭과 같다는 의미이다.

내가 세상의 염려에 잡혀 있다면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한다.

하나님 말씀은 생명이 있어 반드시 열매 맺을 수 있다.

그것은 나를 하나님 앞에 내어드리고 하나님이 나의 마음을 기경하시기를 온전히 맡길 때에 가능하다.

이런 상태가 바로 24절에 보면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라는 말씀이다.

천국은 이 땅에 떠날 때만 경험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결실을 맺는 것이 천국임을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 천국은 단 한 번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25절에 "사람들이 잘 때에" 잘 때에라는 말이 중요하다.

우리가 영적으로 잠들 때에 반드시 우리의 원수 사탄은 "가라지를 덧뿌리고" 즉 진리가 아닌 것을 공존하게 만든다.

예수님은 가라지 와 좋은 씨를 한시적으로 공존시키신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라지를 내버려 두라 하신다.

왜냐하면 좋은 곡식까지 뽑힐 수 있기 때문이다.

추수할 때가 되면 좋은 곡식은 고개를 숙이고 가라지는 먹을 수 없는 다른 열매를 맺지만 고개 숙이지 않고 똑바로 서있다.

그럴 때 추수 군은 똑바로 서있는 가라지를 낫으로 먼저 잘라버려 불속에 던지고 곡식만 모아서 열매는 거두고 볏짚은 태워버린다.

세상과 공존하며 사는 우리의 삶이 영적 단련을 하고 있는 것이 가라지 와 좋은 곡식이 함께 자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가라지 와 좋은 곡식은 외형적으로 굉장히 비슷하다.

그래서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열매를 맺을 때는 분명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즉 심판의 때에는 구별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좋은 곡식이 되기 위해서는 농부 되신 하나님께 마음 밭을 내어드려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옥토로 만들어 주신다.

그러나 우리가 옥토가 되어서 말씀으로 좋은 결실을 맺는다고 해서 다는 아니다.

왜냐하면 원수들은 매일같이 가라지를 뿌리는 것과 같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 단련을 통해 우리는 좋은 곡식을 맺고 가리지는 마지막 하나님의 때에 심판하시게 되어있다.

우리는 결론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 속에 살며 하나님이 훈련 시킬 때에 말씀을 붙잡고 힘을 내어 좋은 결실을 맺기를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천국이다.

결국은 천국은 우리 삶 속에서 고난과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지만

그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심판을 면하는 그 자체가 천국임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이 말씀을 붙잡고 나는 천국의 결실을 맺는 좋은 밭이 되길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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