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는 삶

사무엘 상, 하를 끝내며

차작가 2023. 10. 15. 11:17

사무엘 상은 사무엘과 사을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사무엘하는 다윗의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다.

사무엘 상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물론 많이 있지만

그중에 하나를 이야기한다면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인것 같다.

너무 유명한 내용이라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묵상을 하며,,,

나는 요나단과 같은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나 하는 생각했다.

지금은 나에겐 친구가 한 명도 없다.

그 말은 나는 다른 이에게 좋은 친구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참 슬프고 외롭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런데 과거로 돌아가 보면 나에게도 좋은 친구가 세 명이 있었었다.

그중에 두 명은 한국에 있을 때 아주 오랜 친구들이다.

나에게 믿음의 좋은 본을 보여 준 좋은 친구들이었다.

고민도 나누고 가슴 깊이 있는 나의 이야기를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친구들이었다.

한 명은 대학 때부터 친구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사회에서 만난 친구였다.

지금도 그 친구들을 생각하면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날 때가 많다.

그런데 20년 전 미국에 오고 난부터 연락이 끊어졌다.

찾아보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 생각해 보니 그 친구들은 나에게 요나단 같은 친구들이었는데

나는 과연 그랬었나 하는 의문이 든다.

둘 다 나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믿음의 좋은 본보기가 되는 우러러보는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그 친구들은 나를 보며 많이 부러워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것도 아닌 내가 20대 젊은 아가씨들 눈에는 많이 가진 자였기 때문이었다.

내 친구는 대학도 가지 못했고 심지어 한 명은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 눈에는 한없이 존귀하고 귀한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늘 그 큰 믿음이 부러웠다.

만약 지금 그 친구들을 만난다면 철없고 연약했던 어린 나를 큰마음으로 받아줘서

고맙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한 친구에게는 이민 오기 한 달 전에 만났을 때 정수기를 팔러 왔었는데

나는 그냥 생각이 짧아서 못 사준다고 말했었는데 어려워서 왔을 텐데 눈치 없이

돈을 주거나 그냥 하나 사서 다른 사람에게 줘도 되는 건데 왜 그랬었나.... 하는 후회가 된다,

그때는 몰랐었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는 다리가 불편했는데 한 번도 가방을 들어 준 적도 없었다.

왜냐면 나는 그 친구가 장애를 가졌다고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친구는 얼마 전에 작별을 했다.

올 3월 뇌출혈 한번 겪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다.

절망감에 울면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었다.

그 친구는 이상한 신앙 색깔을 가지고 있는 친구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언젠가는 돌아오리라는 마음으로 기도했었다.

그런데 자꾸만 그 친구가 비 성경적인 말을 많이 해서 위기도 있었지만

미국 생활에서 가장 내가 힘들 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심지어는 물질적으로

도와주었던 친구였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하나님께서 본인에게 이야기했다며 나는 오래 못 살 거고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날 밤 벼랑 끝에 서있는 나를 밀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언젠가 그 친구가 자신이 한말을 후회할 것 같아서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아서

"친구야 사람은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사는 거야 누구나 사람은 죽고 하나님께 가는 거지" 하며

말을 돌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 이후로 자꾸만 그 친구의 말이 생각이 나서 아플 때마다 불안하고 공포심을 느꼈다.

그래서 한 달 전에 솔직하게 내 감정을 그 친구에게 이야기했었다.

그 이후 힘들었던 부분과 그때 말한 것에 대해서 내가 느낀 감정과

절망과 공포와 불안감을...... 그리고 내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를...

의사도, 말씀도 희망을 주는데 꼭 그렇게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야만 하는지를...

공황장애가 있는 나에게 그것도..

솔직하게 말하니까 그 친구의 대답은

"내가 한 말 때문에 힘들다면 미안해 그리고 자기를 보는 게 힘들다면 관계를 끊자"라고 했다.

나는 이게 사과인지 회개인지 나의 논리로는 이해가 안 되었다.

난 지금도 그 친구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내가 이미 용서했다고 말을 했으니

서로 계속 만나며 거리를 좁혀가면 좋겠다.

그런데 말씀을 읽으면서 기도하면서 그 친구를 내려놓기로 했다.

나에게 좋은 영적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친구가 없다.

사무엘하는 요압에 대해서 새로운 점을 많이 발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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