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는 삶

아모스를 끝내며

차작가 2023. 10. 17. 11:07

아모스 선지서를 읽을 때 나는 아모스의 직업이 참 궁금했다.

그래서 나의 추측으로는 직업은 알 수 없으나 정치를 잘 아는 정치 내부 고발자이거나

요즘 말로 하자면 노사위원장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정치가 중에 내부 고발자 일 경우에 큰 비중을 두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공의와 정의가 무너져있는 그 나라의 실상을 너무 세밀하게 잘 설명하고 있었고

문체를 볼 때 지식이 아주 높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7장 14절에 보니까 아모스는 그 둘 다 아닌 목자이며 뽕나무를 재배하는 농부였다.

참 놀라웠다.

아모스의 배경은 남유다의 웃시야가 왕으로 있고 북 이스라엘에는 여로보암 2세가 왕일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대는 아주 부유하고 전쟁이 없는 시기였다. 왜냐하면 두 나라가 공존하기로 합의했고 외세의 위협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시대에는 아직 앗시리아와 이집트가 강한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서 심판을 예언과 고발을 했다.

그중에 대부분이 이스라엘의 정의와 공의가 무너짐에 대한 고발이었다.

내가 성경을 읽으며 충격적인 내용이 있었는데 그중에 돈을 받고 사람을 팔고 신발 한 켤레 값으로 가난한 사람을 팔고

힘없는 자의 머리를 밟고 아들과 아버지가 같이 젊은 여인과 행음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심지어는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이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시고

에돔에서 자기의 민족을 노예로 파는 등

너무나 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나도 읽으면서 분노가 일어나고 어떻게 자기의 동족들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는가라는 마음이 들었다.

자신들도 애굽 땅에서 노예로 살았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스라엘은 멸망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미국 땅에서 이민자로 살아오며 가장 조심해야 할 사람이 같은 동족인 한국 사람이이라는 점이 별반 다르지 않다.

서로 의지하여서 살아도 부족한데 똑같이 타향살이하면서 서로를 믿지 못한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나는 뭐 좀 다른가? 이런 생각을 해본다.

물론 노예를 팔거나 사기를 치거나 그런 적은 없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사람을 평가하고 정죄하고 알기도 전에

불신 먼저 하는 마음도 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앞으로 닥칠 재앙을 예언했다.

그중에 예언은 메시지를 받은 시점으로부터 2년 뒤에 이루어졌다.

그에 대한 기록은 스가랴 14장 5절에 나온다.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이를지라 너희가 그 산 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 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들이 주와 함께 하리라"

나는 아모스를 통해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를 얼마나 중요시하시는지를 깨달았다.

아모스서에서 유명한 말씀인

5장 24절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헌금을 하더라도

우리의 삶 속에 정의와 공의가 없는 삶을 산다면

아무 소용도 없고 하나님은 우리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그리고 우리가 아모스처럼 타락한 세상을 향해 올바른 외침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침묵하는 것도 암묵적 동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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