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설교

복 있는 사람 - 시편 1편

차작가 2023. 11. 15. 11:47

1.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이 누구인 가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두고 ‘저 사람은 참 복 있다. 복받은 사람이다’라고 할 때, 대개 무엇을 보고 그런 말을 할까? 아마 세상적 시각에서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무엇인가가 주어졌을 때 그런 말을 할 것이다. 자식이 부모 속을 썩이지 않고, 공부도 잘하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하고, 가정적으로도 평화로울 때 그것을 부러워하면서 ‘저 사람은 복받았다’는 말을 한다.

2. 성경에서 말하는 복

그런데 시편에서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은 그런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1,2절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을 이렇게 말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본론:

1.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복 있는 사람은

첫째는 악인(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 walk(어쩌다 한 번쯤 따르는 것) in the counsel of the wicked => 악인의 꾀를 멀리해야 한다. 그 이유는 악한 이야기를 자꾸 들으면 악한 영향을 받게 되고 악한 길로 따라갈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복 있는 사람은 듣는 것을 삼가야 한다. 사실 모든 말들이 우리 영혼에 영향을 준다. 대부분의 사람에겐 마음에 문이 없기 때문에 어떤 소리라도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 마음에 문을 달아서 들어야 할 말 듣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한다.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지키면 어떤 악한 자가 와서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해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잠언서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두 번째는 죄인(하나님의 규례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 습관적으로 행한다.

마음에 든 생각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긴다. 좋지 않은 생각이 충동을 받아서 행동으로 옮긴다. 아무 생각 없이 죄를 짓지는 않는다.

한 번이라도 생각했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바로 그 충돌질을 마귀가 한다.

의심을 증폭시키기도 하고 분노를 극대화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런 충돌만 이길 수 있으면 죄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죄를 이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악한 자의 꾀를 듣지 않는 것이다.

한 번 죄의 길에 들어선 후에는 발목이 잡히기 때문에 절대로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다.

죄의 길에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빠져나와야 한다. 마치 새가 그물을 빠져나오듯이 더 늦기 전에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 그런 죄의 길에서 탈출해야 한다.

세 번째는 오만한(하나님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 상태는 이미 마음이 굳어져 죄의 길로만 행할 수밖에 없는 상태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자신 맘대로 살게 된다. 내 마음대로 욕심만 채우는 상태이다. 오만한 자의 특징은 혼자 죄짓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반드시 끌어들인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기 맘대로 끌려오지 않으면 핍박한다. 그 정도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멸망은 작정되어 있다. 그래서 오만한 자리는 사탄이 앉을 자리이지 인간이 앉아서는 안 될 자리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인정하는 복 있는 사람은 세상과 분리된 거룩한 사람을 뜻한다.

 

2.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한다.

더 적극적인 자세는 이런 세상을 닮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이 할 수 있는 일,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영향을 받지 않고 하나님 말씀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먼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매우 딱딱하고 엄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복 있는 사람은 율법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우선, 율법은 그냥 딱딱한 법이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딱딱하고 엄격하게 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다.

그 예는, (어머니가 아이가 먹고 싶은 것을 금할 때가 있다. 그것을 먹는 것이 아이의 건강과 몸에 해롭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의 관점에서 보지 않으면 언제나 오해가 생긴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신 것이다. 먹지 말라는 음식을 보면 지저분한 동물들이 대부분이다. 잡식성. 먹을 수 있는 동물들은 대부분 초식만 하는 동물들이다. 돼지보다는 소고기가 더 좋다. 출애굽기나 레위기, 신명기에 있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율법을 자세히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율법은 생명을 주는 말씀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겐 율법이 엄하고 딱딱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율법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래서 율법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고 변화된 사람임을 뜻한다.

요한복음에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의 말씀이 이 땅에 예수그리스도로 오셨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율법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즐거워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그 말씀과 항상 함께 하고 싶어서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

말씀을 항상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향한 연애편지라고 볼 수 있다. 연애편지 받고서 한번 보고 버리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말씀이신 예수님을 즐거워한다면 이렇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을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 말씀 앞에 나오게 되어 있고 그 말씀을 늘 묵상하게 되어 있다. 성경을 억지로 읽어야겠다고 읽어지는 게 아니다. 왜 성경을 멀리하나? 그 근본 원인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잘 점검해 봐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복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알수록 그만큼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여호와를 힘써 알라’고 말씀하신다.

3.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동행하는 삶을 살면 자연스럽게 악인들의 삶에서 멀어지고 죄된 삶을 살지 않게 된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복 있는 사람이다.

 

4. 복 있는 사람의 결과

그 첫 번째는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3절)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물가에 심기 운 나무처럼 언제나 형통하더라는 것이다. 그 뿌리가 하나님께 닿아 있기 때문에 뿌리가 마르지 않고 나무가 잘 자라고 또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무가 형통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열매를 많아 맺는 것이다. 그 열매는 결국은 남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성경에서의 형통은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성경의 다른 예는,

여호수아 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 전쟁에서 아이성 전투 빼고 한 번도 지지 않고 약속의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 왜냐면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셉의 경우.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9: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 형통의 원인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었다.

그런데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한때 잘 되는 것 같다가도 어느 한순간에 다 망해 버리더라는 것이다. 그 뿌리가 세상에 닿아 있기 때문에 뿌리가 마르고 결국엔 나무도 말라서 죽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인정(know-yada) 하신다. (6절)

"아신다"라는 =>

*그들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아신다.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헌신을 아신다.

* 예수님과 살을 섞은 관계를 맺었으니 아신다는 것이다. 반면에 악인들은 모르신다고 한다. (마 7:23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심판의 근거가 하나님의 아심이다.

그래서 인간의 진정한 복은 죽은 후에 하나님 앞에서 판가름 난다. 그때에 받을 복에 비하면 이 세상의 복은 복이라고 할 수도 없다.

진정으로 복이 있는 사람은 지금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서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알기에 자기 할 말 다 하지 못하고 자기 욕심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귀중하게 보신다. 결국 이 귀한 한평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 자들만 영원한 하나님의 복 가운데 있게 되는 것이다.

결론:

행복한 사람이세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나요? 하나님을 사랑하세요? 그럼 행복한 사람이다. 진심으로 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시편 1편에서 말하는 있는 사람으로 살기를 소원해야 한다. 말씀 되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의 가르침을 즐거워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이런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이다. 진정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