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출애굽기 마지막 부분이다.
25장에서 40장 부분은 성막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성막은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신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하는 성막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성막의 구름기둥이 머물면 이스라엘은 행진을 멈추고 구름기둥이 움직이면 백성들도 행진했다.
오늘 그 성막을 마무리하며 출애굽기의 1장에서 40장이 끝난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 성막이나 성막에 관해서 아주 따분하게 생각한다.
나는 오늘 말씀에서 특히 성막 부분에 있어서는 자세히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규빗과 같은 측량단위가 익숙하지 않아서 머리로 그려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성경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책을 읽고 있다.
그리고 유튜브에 있는 출애굽기 강해 설교(송태근 목사님의 53강의)를 모두 들었다.
그리고 약 10년 전 랭캐스터에서 실제 크기의 성막 모형을 보았던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성막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서 날씨가 좋아지면 이참에 한 번 더 가볼 계획이 있다.
성막에 대해서는 실제적인 시청각 자료를 보는 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오늘 말씀 중에 32장에서 금송아지를 만드는 장면을 나누고 싶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든 알지 못함이라" 이 부분에서
그동안 깨닫지 못한 말씀의 의미를 알게 하셨다.
나는 이 말씀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의미는 모세가 내려오지 않자 아론에게 찾아가서
모세가 어디 있느냐며 공포스러울 만큼 아론을 압제하자 아론은 두려워서 금고리나 금을 모아서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라 했고 또 거기서 번제를 드리고 먹고 마시며 일어나 뛰어놀았다 이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요지는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인도한 신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이 부분이 중요하다.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가르고 열 가지 재앙을 내리고 반석에서 물이 나고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사람인 모세가 했다고 인지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렇게 쉽게 또 다른 신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 점을 아시고 굉장히 진노하셨다.
그래서 그들을 진멸하실 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면 백성들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모세가 백성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죽이셨다.
그리고 33장 3절에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 가지 아니하리니"라고 결정하셨다.
이 목이 곧은 백성에게 그러나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셨다.
간절한 모세의 기도 때문에 그들은 33장 5절 하반부에
"너희는 장신구를 떼어 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하겠노라 하셨음이라"
그들은 하나님의 분노하심을 알았고 자신들을 죽이기도 하시는 심판자 이심을 눈으로 보고서야 하나님을 알았다.
이제서야 그들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후에 하나님은 회막문에 구름 기둥을 보여 주셨고 각기 장막 문 앞에서 서서 예배드렸다.
드디어 백성들은 하나님을 알았기에 성막을 지을 준비가 된 것이다.
성막을 짖기 전에 반드시 이 심판의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오늘 하루도 주님과 동행하겠노라 기도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에 금방 두려워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취한 것처럼
말씀을 읽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내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서 마치 금송아지를 찾듯 말씀을 읽을 때가 없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감히 모세와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지만 출애굽기 43장 12절에서 14절 말씀처럼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 건데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백성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이런 기도를 하고 싶다.
33장 17절 후반 부에도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이런 말씀이 또 나온다.
이름으로도 안다는 이 말씀이 모세의 이름의 의미가 "물에서 건졌다"라는 의미인데 모세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이다.
물에서 건진바 된 모세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용되는 종이며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자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예표였다.
내 이름의 뜻은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하나님이 내 이름을 기억하시고 너를 안다 하시고
주님의 목전에서 주님의 은총을 입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리고 모세에게 말씀을 주신 것처럼 주의 길을 성경 말씀을 통해 보여 주셔서 나에게 주님을 더 알게 하시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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