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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같은 길을 걷는 참된 성도 - 미가 5장 1-9절

차작가 2023. 11. 24. 12:49

신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남기신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성경이 없다면 그 누구도 어둠에서 빛을 볼 수 없고, 결국 어둠에 갇힌 자로 끝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약에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 사람이 선지자였다. 선지자에게 말씀을 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게 하셨다. 만약 선지자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어둠에 있으면서 어둠에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어둠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의 역할은 어둠을 어둠이라고 외치고 틀린 것을 틀렸다고 외치는 것이다. 이러한 선지자의 말은 자연히 독할 수밖에 없다.

본문의 선지자의 외침을 보면,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을 말을 하고 있다. 사람이 세상을 사는데 필요한 내용들은 전혀 없다. 돈도 떡도 되지 않을 말들뿐이다. 이런 말들은 사람들에게 외면 받았고, 선지자도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세상을 사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 같은 이 말씀들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오늘도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1절을 보면 “딸 군대여 너는 떼를 모을지어다 그들이 우리를 에워쌌으니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로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재판자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이방인에게 뺨을 맞는 수치를 받으니 무리를 모아 전쟁에 임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전쟁에 임할 힘도 지도자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의 힘으로는 군대를 모을 수도 없고, 이방인과 더불어 싸울 수도 없었다. 이러한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는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을 예언했다. 즉 메시아의 등장을 예언하는 것이다.

2절을 보면 이 메시아는 유다 족속 중에 가장 작은 베들레헴으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가장 작다는 것은 보잘 것 없고 힘없는 존재를 뜻한다. 이처럼 이스라엘을 다스릴 새로운 지도자는 그 출생부터가 사람의 상식을 벗어났다.

이스라엘을 다스릴 지도자라면 번듯한 족속과 가문을 따라 나야 한다는 것이 세상의 상식이다. 보통 사람과는 다른 차별적인 가문에서 나와야 이스라엘을 다스릴 지도자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을 무너뜨리고 보잘것없는 가장 작은 족속에게서 메시아가 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사람들은 모두 내노라하는 가문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왕은 왕의 혈통을 따라 세워진다. 혹 신하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해도 그들은 모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대대로 힘 있는 가문의 사람들이 다스렸다. 하지만 결국 이방인으로 인해 멸망을 받고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수치를 받았다. 다시 말해서 힘 있는 가문이나 인물로 지탱하는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메시아는 가문이나 힘과는 상관이 없는 분으로 오신다. 그것도 유다 족속 중에 가장 작은 베들레헴으로부터 오시는 것이다.

4절을 보면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라고 말한다.

이처럼 메시아는 세상의 가문이나 힘을 근본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능력과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목축을 하신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이방인에 의해서 망하고 수치를 받은 이스라엘에게 이런 예언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조금만 기다리면 강력한 새로운 지도자를 보내서 이스라엘을 구해낼 것이니까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아를 기다리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까?

메시아 예언은 그런 뜻이 아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오해하고 자신들을 이방인의 손에서 구할 메시아를 기대했다. 그래서 그들은 강력한 힘을 가진 메시아를 기다렸고, 그로 인해서 선지자의 예언대로 가장 작은 베들레헴에서부터 나신 예수님이 메시아 이심을 알아보지 못했다.

선지자가 메시아에 대해 예언한 것은 메시아가 와서 세울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에 대한 것이다. 메시아가 오시고 자기 백성을 불러 모으시고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다스릴 나라가 어떤 나라냐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은 기존의 이스라엘을 부인하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세워질 참된 이스라엘에 대해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5-7절을 보면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대로 하면 새로운 지도자는 평강이 되시는 분인데, 그분이 하는 일이 앗수르가 쳐들어 왔을 때 그들을 물리치고 그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해내시는 일을 하는 분이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이 말대로 이스라엘이 앗수르를 쳐서 황폐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보면 여기서 말한 앗수르는 실제 앗수르라는 이방 나라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힘을 믿고 살아가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메시아가 오셔서 하는 일은 자기 백성을 힘으로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구출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힘으로 사는 세상의 사고방식으로부터 건져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야곱의 남은 자, 즉 메시아가 오셔서 불러 모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인생을 기다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슬과 단비는 연약함을 의미한다. 이들은 사람도 자기 인생도 기다리지 않는다. 사람도 자기 인생도 힘으로 삼거나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이다. 이것이 남은 자의 모습이다.

이러한 남은 자가 모이고, 예수님이 다스린다면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일까?’하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힘과는 상관이 없는 나라이다. 이것이 진정한 메시아의 나라이다. 이 메시아의 나라 외에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다.

10,1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이르러는 내가 네 군마를 네 가운데에서 멸절하며 네 병거를 부수며 네 땅의 성읍들을 멸하며 네 모든 견고한 성을 무너뜨릴 것이며”라고 말한다.

군마는 힘의 상징이며 견고한 성은 인간의 안식처의 상징이다. 군마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견고한 성이 자신을 보호한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무너질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마도 힘이 되지 못하고, 견고한 성도 안식처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전지전능으로 우리에게 함께 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 시라는 고백으로 사는 그가 하나님이 백성인 것이다. 그런데도 힘 있는 자 되기를 원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신자는 힘과는 상관없는 길로 부름 받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보면서 힘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믿음의 길을 가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가장 작은 베들레헴의 짐승 우리에서 나시고 고난의 길을 가신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신자는 예수님과 같은 길에 서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