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설교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본분 - 시편 37편 1-9절

차작가 2023. 11. 27. 12:55

도입:

미운 오리 새끼

안데르센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미운 오리 새끼』는 알다시피 정체성에 관한 동화이다. 엉뚱하게 오리 둥지에서 깨어난 ‘미운 오리 새끼’는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주변으로부터 차별과 따돌림을 당한다. “내가 못생겨서 모두들 날 싫어하는 거야.”라고 생각

한 미운 오리 새끼는 고향을 떠나 온갖 고초를 겪는다. 그렇게 잔인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미운 오리 새끼는 아름다운 백조의 무리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헤엄쳐 간다. 오리들에게 쪼이고 닭에게 맞고 겨울에 굶주려 죽느니 차라리 백조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바로 그때 미운 오리 새끼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한 마리 백조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애초부터 그의 참모습은 백조였기 때문에 오리에게서 태어난 것쯤은 아무런 허물도 아니었다."라는 이야기 속 화자의 언급에서 작가의 메시지를 읽어 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윽고 ‘백조’가 된 ‘미운 오리 새끼’가 닭장이 아닌 아름다운 정원에서 아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을 만끽하는 것으로 이 동화는 마무리된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자신의 현재 모습에 낙담하지 말고 주변의 냉대와 차별도 잘 견뎌 내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의 진정한 본질(정체성)을 발견하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본론:

오늘 본문은 우리 (세상에 섞여서 살고 있는) 성도들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파악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바로 알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거나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은 정체성을 바로 알지 못해서이다.

A. 해서는 안 될 것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알려 주고 있다.

1. 불평하지 말고 시기 하지 말라

1절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악인들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법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온갖 불법을 행하면서도 편하게 잘 사는 것 처럼 보인다. 반대로 하나님의 법을 따르려고 애쓰는 성도는 편하게 잘 살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 악인들을 보며 불평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잘 믿는 내가 성공하면 좋겠는데 악한 자들이 나보다 더 잘 될 때, 우리는 마음 속으로 악한 자에 대한 시기심이 생기고 은근히 그가 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악인들의 자유스러움을 시기하기 쉽다. 악인들은 성공하기 위해 인간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쓸 수 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슨 짓이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도들은 택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나도 제한 되어 있다. 이것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시기’하는 마음이다.

그러면 악인들을 시기하는 것이 왜 나쁠까?

아직 내 마음속에 여전히 세상적인 욕심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사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고 기쁨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불의한 방법으로 잘 되는 것이 부럽게 보인다면 아직 우리가 세상의 때를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해서이다. 과거의 옛 사람이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기 때문에 악인이 잘 되는 것이 부러운 것이다.

악인들을 시기하는 이유는 우리들 마음속에 자유로워 지고 싶은 욕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예수를 몰랐더라면 지금 보다 더 자유로웠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그 자유분방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미련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후 계속 미련을 가졌던 것도 애굽의 자유분방한 삶이었다. 애굽에서 그들은 비록 노예였지만 광야에서 율법을 듣는 것보다는 그 생활이 훨씬 자유로웠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도 마음속으로는 모든 것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서 악인을 부러워하는 거다.

우리가 보기에 악인이 당장은 잘 되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결코 오래 가지 않는다. 2절에 그 악인의 결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2절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풀은 어떻나? 비가 한번 오고 나면 키가 장대같이 자란다. 그러나 낫질을 한번 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채소는 대체로 일 년생이다. 채소가 한창 자랄 때는 무성하지만 때가 지나고 찬바람이 불면 모두 다 시들고 만다.

이렇듯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죄를 가까이 하는 악한 자는 결국 망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식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인의 몰락이 보여주는 것은, 인생을 너무 짧은 안목으로 보지 말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악인의 결말을 알면서도 불평과 원망이 나오는 것은 아직 우리의 고상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가 자신이 백조임을 몰랐을 때 다른 오리의 하얀 깃털이 부러운 것처럼) 하지만 이런 불평이 나올 때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미운 오리 새끼가 다른 오리들과 다른 것처럼) 우리가 악인들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B.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어떤 것을 해야 하는가?

1. ‘여호와를 의뢰해야’ 한다.

왜 여호와를 의뢰(trust) 해야 할까? 의뢰하려는 용기는 언제 나올까? 내 자신 보다는 더 믿음이 가는 대상에게만 의뢰할 수 있다. 하나님만 의뢰한 두 사람 요셉과 다니엘의 경우를 보면.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다. 그 당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게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못했었다. 다니엘도 바벨론에 전쟁 포로로 잡혀 가면서 자기가 바벨론과 페르시아에서 총리가 될 줄을 꿈이나 꾸었을까? 그러니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초반부터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갈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끝까지 의뢰하는 것이다.

2. 그리고 ‘선을 행하라’이다.

선의 기준은 하나님이다. 왜냐면 하나님만이 참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을 행한다는 것은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맞게 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을 말한다.

3.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하나님이 성도를 인도하시는 길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많은 사람들은 천국은 하나님만 믿으면 자동적으로 가는 것으로 간주한다. 때문에 항상 관심은 세상에서의 복으로 향한다.

그러나 천국은 하나님만 믿으면 자동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세상에 마음이 기울어져 살아가는 우리들을 다스리시고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수고하시는 하나님의 수고로 인해 들어가게 됨을 알아야 한다.

여호와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아라는 것은 여호와의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 성도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성실하심이 우리를 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약속을 이루시는 여호와의 성실하심의 결과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방해하는 대적과 싸워 승리하심으로써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고 죄에 붙들려 있던 우리를 기어코 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신 여호와의 성실하심을 생각한다면 성도는 여호와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아 배부름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럼, 여호와의 성실하심이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갈까? 바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로 감사하면서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나의 갈 길로 믿고 그 길로 가게 해달라고 소원하는 성도로 만들어 가신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바로 하나님 자신을 알아 가는 기쁨을 말한다. 우리가 성경을 배워 나가면 그곳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기쁨이 있다. 이것이 바로 성경 속에 들어 있는 보배를 캐내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 갈 수록 우리는 더욱더 풍성한 영혼의 복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을 알아가면 알아 갈 수록 신앙적인 눈으로 이 세상을 보기 때문에 마음속에 진정한 소망이 생기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이렇게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주시는데, 그것이야말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면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신다.

이것이 여호와의 일이고, 이러한 여호와의 일로 기뻐한다면 그 소원이 세상의 것을 얻고 취하는 것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가게 된다. 하나님은 이러한 소원을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

그런데 이 길은 우리의 힘으로 갈 수가 없기 때문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호와가 이루신다.

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성경은 우리의 시각을 바꿀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악한 자와 경쟁이 되는 것 같아서 마음속에 불평이 생기는데, 성경적인 관점으로 보면 시기할 이유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악한 자와 우리는 길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경쟁이 안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에 대해서 전혀 마음이 아파할 이유가 없다.

내가 아직 잘 풀리지 않는 것은 나의 때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과 내가 못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경쟁심이나 은근히 그들이 못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이런 마음이 바로 우리 길을 여호와께 맡기는 것이다. 우리의 길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그 분의 완전한 뜻에 의해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에 대하여 정해 놓으신 길이 분명히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불필요한 경쟁심을 버려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경쟁적인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좁아져서 감사가 나오지 않고 기쁨을 잃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슬픔엔 잘 함께 하는데 기쁨엔 잘 함께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이런 마음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길이 있다는 걸 모를 때 그렇다. 하지만 하나님의 길을 인정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이 기쁘고 또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인지 못 되기를 바라는 사람인지 아주 금방 눈치를 챈다. 그래서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의 문을 쉽게 여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에 대해 화를 내고 분을 내고 있다면 아직 나의 길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뜻이다. 내가 갈 길은 다른 사람과 다르며 결코 경쟁의 상대가 아니다. 우리의 길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다.

이렇게 여러분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면 5절에 ‘그가 이루신다’그리고 36절에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신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맡긴 자를 세상이 다 알도록 그 사람을 높이시겠다는 것이다. 요셉과 다니엘이 그랬다. 요셉과 다니엘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 하시고자 하는 게 이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6. 7절 처럼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이다.

인내하고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실 때 까지 잠잠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8절처럼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이다. 이것이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고 경고하셨다.

결론:

9절을 보면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라고 말씀하신다. 악인의 길과 성도의 길은 분명히 다르다. 악인은 끊어지는 길을 가지만 성도는 땅을 차지하게 된다. 땅을 차지 한다는 것은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말한다. 그 영향력을 통해 바른 삶으로 돌아오는 자들이 점점 많아지게 된다.

성도는 인도받는 그 길이 처음부터 다르다. 행악 자는 하나님의 내어버려두심 가운데 자기 욕망을 따라 자기를 위한 길을 가다가 결국 베어지는 운명에 처하지만, 성도는 하나님이 간섭하고 다스리시면서 영원히 사는 길로 인도받는다.

이 길의 차이를 잊지 않고, 길의 다름을 안다면 행악자들이 현재에 누리는 것들로 인해 불평하고 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길이 다르다는 것,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본분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