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묵상

바른 기도 - 사도행전 4장 23-31절

차작가 2023. 12. 8. 14:26

성경:

23절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고하니

24절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오

25절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 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절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절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28절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9절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30절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절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본문 해석:

기도는 우리의 소원을 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는 것이다.

예수의 도를 전한다는 것 때문에 붙잡혀 갇힌 사도들이 예수의 도를 전하지 말라는 많은 위협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만 들을 뿐이라는 단호함을 보였다. 이러한 사도들을 죽이고 싶은 것이 장로들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마음이었으나 사도들이 행한 일을 보고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로 인하여 할 수 없이 풀어주게 된 것이다.

이렇게 풀려난 사도들이 돌아와서 자기 동료들에게 제사장과 장로들이 한 말을 얘기하게 되고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본문의 내용이다.

4: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사도들이 놓일 때 단지 예수의 이름으로만 말하지 말라는 협박만 듣고 풀려난 것은 다른 제자들이 생각했을 때 기적이었다. 예수님처럼 죽음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소리 높여 찬양한 이유는 이렇게 풀려난 일은 그저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역사로 인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결국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4:24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master, absolute lord, sovereign lord) 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

오늘날 신자들의 기도에서 고쳐져야 할 점이 바로 이것이다. 기도를 시작하면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생사화복을 주장하신 하나님' 등의 표현을 하고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그저 기도를 위한 의례적인 표현으로 그쳐버린다는 점이다. 즉 기도를 기도답게 만들기 위해서 사용하는 미사여구 정도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으면서 그저 기도를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언어로 그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도들이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을 높이기 위한 언어가 아니다. 하나님을 대주재로 말하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신 분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주재하고 계심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상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오직 복종뿐이다. 하나님이 창조주가 되시며 세상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주재이시고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서 취할 태도는 오직 복종(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사도들을 놓아 주었던 것도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하였기 때문에) 밖에 없다.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진행해 가시든 피조물인 우리는 복종하는 것만이 대주재이시고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을 부르는 신자로서 합당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대 주재이신 하나님에 대해 세상의 반응은 어떨까? 25~26절을 보자.

4: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4: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 시편 2:1-3절 말씀 인용 하나님이 세상에 대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알 수 있다.

열방이 분노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분노를 말한다. 즉 세상에 대해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음으로 분노했다. 그리고 열방들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인간 중심으로 모든 일을 경영하는 것을 두고 허사를 경영한 것으로 말씀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 주와 그리스도를 대적한다는 것은 하늘에 권세가 있음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들의 권세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다윗의 입을 의탁 하사 성령으로 그러한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사도들이 이러한 기도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알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서 사도들은 대주재이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말하면서 '이렇게 해달라'라는 기도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복종만이 요구될 뿐임을 아는 사도들이었다.

세상은 여호와를 의지하기는커녕 여호와를 대적하며 여호와의 주권으로부터 벗어나기만을 꾀한다. 이것을 1-3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여호와를 의지하기를 거부하는 세상은 여호와와 그리고 여호와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을 대적하며 그 권세에 복종하지 않고 자유코자 한다. 즉 열방의 분노는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주관하고 붙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자신의 왕이 되어 자기 뜻대로 살기를 즐기는 세상에는 여호와께서 세우신 왕이 있고 주관자가 있다는 것이 분노의 이유였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러한 세상이 허사를 경영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세상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을 원한다. 신의 뜻대로 나의 인생을 이끌어 가고 간섭하는 신은 애당초 원하는 신이 아니었다.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데 나를 주관하고 다스리면서 신의 뜻대로 내 인생을 간섭하고 내가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그 길을 걷게 하는 신에 대해서는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게 세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나? 하나님이 우리의 주관자로서 우리의 모든 인생을 간섭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시는 것을 받아들이며 순종하고 있나? 순종은 둘째 치고서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나?

하지만 우리는 겉으로는 당연하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내 인생을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나아가서 나에게 힘들고 고통이 있는 길로 인도해 가실 때 당연하다는 마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왜 이런 길로 인도하시는가?’ 하며 원망하고 불평하며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 분노한다.

대주재이신 하나님은 스스로 창조하신 만유를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모든 역사는 우리가 생각할 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하나님의 뜻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들이다.

이것을 고백하는 것이 27-28 절이다.

4: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4: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사도들은 헤롯과 빌라도가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메시아를 대적한 것은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쓴 시편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도들은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성경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다는 사실을 증거 한 것이다. 또 그들은 주권자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불신앙과 대항도 그의 기쁘신 뜻을 이루는데 사용하셨음을 말했다.

4: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무엇을 기도해야 하나? 사도들은 하나님께 몇 가지를 간구했다.

첫째는 권세자들의 위협을 보시옵소서라는 간구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면 사도들을 위해 적절하게 조치하여 사도들을 보호해 주시든지 피신시켜 주시든지 아니면 원수들을 진멸시켜 주실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사도들은 예수의 도를 전한다는 것 때문에 붙들려서 위협을 받다가 풀려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도들을 위협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어떤 징벌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해서 사도들을 괴롭히도록 그냥 두고만 보시고 결국 그들의 힘에 의해서 사도들이 죽기도 했다.

신자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남들보다 더 많은 유익을 받아야 하고 잘 살아야 한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오히려 신자이기 때문에 당해야 하는 것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은 사도들을 핍박하는 세력을 그냥 둠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신다. 사도들에게 닥친 난관을 없앰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난관을 있게 하셔서 일을 이루신다. 어떤 난관에서도 끝까지 그리스도를 주장하는 사도들을 통해서 세상에 그리스도를 전파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는 사도들을 핍박하는 무리들을 그냥 두셔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이것이 우리들에게는 불만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힘으로써 세상을 굴복시키는 방식으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세상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예수의 도를 따라 살아가는 신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즉 십자가를 지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둘째는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옵소서라는 간구이다. 진리에 대한 핍박은 예견된 것이며,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을 없애주시기를 구함보다 그것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해주시기를 구했던 것이다. 진리 운동에 고난과 핍박은 항상 있다. 그러나 전도를 통해 영혼들은 구원을 얻고 교회는 설립되고 확장될 것이다. 그러므로 담대히 계속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확신 있게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전도는 교회의 사명이며 모든 신자들에게 가장 귀한 일이다.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도 더 큰 중요성을 두고 이루어야 할 과제이다.

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셋째는 주의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는 간구이었다. 이 기도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병나음과 어떤 능력적인 표적을 원하는 기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구절로 오해되기 십상이다. 사도들도 그러한 기도를 했으니 우리도 그러한 기도를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의 기도를 깊이 생각해 보면 결코 그러한 의미로 한 기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사도들은 어떤 의미로 병 낫게 해달라고 하고 표적과 기사를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일까? 병을 낫게 해달라는 것은 자신이 병이 들었을 때 그 병을 낫게 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달라는 것이 아니라 병을 낫게 하는 모든 일들이 오직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되도록 해달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대주재로 부르는 사도들에게 맞는 기도일 것이다.

그리고 표적과 기사가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것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쓰이고 있음을 알게 해달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표적과 기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남에게 내세울 수 있는 멋있고 폼 잡을 수 있는 그런 기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쓰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즉 사도들은 자신들의 삶이 어떤 환난과 핍박과 위협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오직 주 예수의 이름만이 증거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표적과 기사로 말하는 것이다.

사도들의 기도는 절대로 자신들의 유익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증거 되는 것을 소원했다. 그것이 그들의 기도에서 나타난다. 자신들이 손을 들어 병을 낫게 하는 일이나 그 외 모든 표적과 기사들이 자신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는 도구로 쓰이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그 일을 위해서는 핍박을 받아도 괜찮고 위협을 받아도 괜찮다고 여겼다. 사도들이 이러한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은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핍박을 받고 위협을 받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는 것임을 확신하기에 그러한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기도 응답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성령이 충만한 결과는 반드시 전도로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의 기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셨다. 모인 곳은 진동했고 모든 사도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얻었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성령은 능력의 영이시며 능력을 주시는 영이시다. 사람은 대적자들의 위협 앞에서 마음이 약해지기 쉽지만, 성령의 충만함으로 결국 담력을 얻었다.

결론:

오늘 우리도 성령의 충만함을 얻음으로 담대히 전도할 수 있다. 전도의 담력은 성령 충만에서 나온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어려울 때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성도가 세상에서 고난을 이기는 승리적 삶의 방법이다. 또 성도는 세상의 고난과 핍박 중에도 담대함을 가지기를 간구해야 하며, 또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을 얻어 담대히 신앙생활, 봉사 생활을 하고 또 전도할 수 있어야 한다.

사도들의 기도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기도이다. 사도들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길 기도해야 한다. 사도들과 같은 심정의 기도가 필요하다. 그럴 때 우리는 환난과 핍박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