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묵상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 - 사도행전 5장 27-42절

차작가 2023. 12. 10. 13:25

본문 해석: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이로 인해서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이것을 시기한 대제사장과 사두개인 당파가 사도들을 붙들어서 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의 사자를 사도들에게 보내서 옥에서 그들을 나오게 하셨다. 옥에 갇힌 자가 옥에서 빠져나왔다는 것만 두고 본다면 그렇게 신기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주의 사자가 와서 그들을 구출했다는 것은 사도들을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놀라운 이적이고 표적이었다.

그런데 사도들에게 그런 놀라운 이적이 일어났으면 이제는 아무도 사도들을 방해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어 사도들은 마음 놓고 복음을 전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본문을 보면 옥에서 나온 사도들을 다시 붙들어다가 공회 앞에 세운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여전히 사도들은 붙들림을 당했고 대제사장으로부터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28절)와 같이 위협을 받았다.

이를 볼 때 도대체 '주의 사자로 인해서 옥에서 구출 받은 기적을 체험한 것이 사도들에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이 기적을 체험하기를 원하는 것은, 기적을 체험하기만 하면 자신이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기적을 입으면 자신이 현재보다 수준 높은 사람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 차별화된 신앙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는 그러한 생각이 기적에 대한 큰 착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적은 기적을 베푸신 분이 누군가를 증거하는 것이지 기적을 입은 자를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어떤 기적을 경험했다고 해도 그 기적으로 인해서 차별화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문둥 병자, 중풍병자, 소경 등등의 병자를 고치시면서 수많은 기적을 보이셨다.

그러나 그 기적들 하나하나가 목적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누구신가?'를 증거하는 것이었지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을 특별히 다른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놀라운 기적을 한번 체험을 하기만 하면 뭔가 삶이 달라지고 다른 사람과는 차별된 존재가 될 것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기적에 대한 착각이고 잘못된 생각이다.

다시 말하지만 기적은 기적을 베푸신 분에게 그 목적과 초점이 있는 것이지 기적을 입은 자는 단지 기적을 보여주는 도구일 뿐임을 알아야 한다.

주의 사자가 와서 사도들을 옥에서 나오게 한 것은 분명 신비한 일이다. 사도 개인적으로 본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한 것이다. 경험만으로 본다면 특별한 사람들임이 분명하고 우리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옥에 갇혀도 주의 사자가 구출해 주는 그런 기적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기적을 입은 사도들이 다시 붙들려서 공회에 서게 되었다. 앞서 말한 대로 기적을 경험했다는 것이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데 환경적으로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 때문에 죽음을 당할 위기에 빠졌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주의 사자를 보내서 사도들을 구해준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을 20절에 있는 말씀을 근거로 해서 '주의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라는 것 때문에 구하셨다고 했다.

그럼 기적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고 그저 한순간의 기적으로 끝나는 것이었을까?

우린 본문에서 사도들에게서 기적의 증거물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위협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곧 기적을 경험한 자에게서 볼 수 있는 증거였다.

사도들을 옥에 가두어 붙들어 놓은 것은 세상의 권력이다. 대제사장과 사두개인 당파들은 당시 종교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막강한 힘으로 군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을 자기들 마음대로 가둘 수가 있었던 것이고, 결국 '사도들은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에 의해서 갇혔다'라고 말하기보다는 권력에 의해서 갇혔다고 보는 것이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주의 사자가 사도들을 풀어주게 되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했다. 이것을 통해 생명의 말씀이 전파되는 것은 그 무엇도 방해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세상의 권력에도 방해받지 않는 것이 복음 전파이다. 생명의 말씀이 전파되는 것은 인간의 책임 아래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책임 아래서 있는 것이고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 역시 하나님의 책임 아래 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면, 아무도 그들을 위협하지 못하고 붙들 수 없도록 막아주시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본문에서는 전혀 반대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과연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느 한 인간을 지키고 보호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맡기신 생명의 말씀을 지키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복음을 맡은 자가 설사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고 해도 절대로 복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오해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29-32절에 보면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라고 말한다.

사도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이 어떠한 것인가와 상관없이 복음을 전한다. 이들은 무엇을 근거로 이러한 믿음이 있을까?

그것이 바로 주의 사자를 보내서 옥에서 그들을 구출해 준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즉 자신들은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 아래 있음을 알았기에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두려움 없이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복음을 전하면 어떤 위기에서도 살려준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책임 아래 있고 지키심과 보호 아래 있기 때문에 설사 복음을 전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죽음을 당한다고 해도 그것 역시 하나님의 책임 아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믿었다.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옥에서 구출된 기적의 사건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책임 아래 있고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면 우리를 어떤 위기나 나쁜 상황에서도 구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다. 즉 모든 일이 설령 내 입장에서는 나쁜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책임 아래 있다는 시각이 없다. 이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닐까?

결론:

오늘날 성도의 문제점은 하나님을 말하면서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을 배워가는 것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하나님만 상상한다.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이것이 결국 하나님이라고 이름하는 우상을 세워 가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믿음에는 생명과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기적이 사도들을 가르친 것은 앞으로 어떤 위기에서도 구출해 준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위기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생명의 말씀을 전할 자로 세움 받았기에 하나님의 책임 아래 있고 생명의 말씀을 위해서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에 두려워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41절에서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책임 아래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신다는 것은 우리를 원하는 대로 편한 삶으로 책임지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맡은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책임지신다는 의미이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성도로 하여금 어떤 고난과 힘든 일에서도 복음을 포기하지 않는 쪽으로 이끌어 가신다. 어떤 삶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이 하나님이 책임 지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지키심이고 보호하심이다.

우리가 살아가시면서 겪는 힘든 일들,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그냥 애매하게 있는 일들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생명의 말씀을 맡기신 우리에게 그런 일들을 통하여 복음의 열매를 만들어 내신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것으로 말씀이 살아있음을 증거하시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겪는 삶의 어려움에서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