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묵상

고린도 교회 탄생과 성장 - 사도행전 18장 1-11절

차작가 2023. 12. 15. 11:54

고린도 교회 탄생 (교회 탄생의 세 가지 요소)

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아덴을 떠나서 고린도에 이르게 된다. 바울은 아덴에서 철학자들과 쟁론하며 ‘말쟁이’라는 조롱의 말까지 들었다. 다른 곳에서는 바울의 말을 듣고 믿는 자들이 있었는데 아덴에서는 단지 새로운 교를 전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아덴에서 복음 전도하다가 많은 역경을 겪고 별 열매도 없이 바울은 그곳으로부터 약 50마일 떨어진 고린도(로마 식민지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당시 인구가 약 20만 명 추정. 제사당에는 약 천명 정도 여사제들이 있었고 저녁에는 매춘하였다. ‘고린도스럽다’는 말은 성적으로 타락한 그런 말이 있을 정도로 타락한 도시였다.) 지역으로 오게 된다. 이곳에 온 바울은 처음엔 매우 외롭고 두려웠다 (고전 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이런 상태에서 바울은 사람의 위로가 필요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바울을 위해 동역자를 보내 주셨다.

본문

1. 첫 번째는 동역자이다.

동역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2절에 만났다고 되어 있는데 찾았다(found)가 맞다. 동역자를 찾는 자세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지만(하나님이 AD 49년경에 글라우디오 황제를 통해 유대인들을 이탈리아에서 떠나게 하심-하나님이 주도하심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이질적인 그리스 문화에 바울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외로웠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바울의 필요를 채우셨다.

언제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바울에게는 장막을 만드는 기술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고린도로 온 바울을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양식을 위해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있는 장막 만드는 기술을 이용하기 위해 장막 만드는 사람을 찾았을 것이고, 그로 인해서 장막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던 아굴라 부부(사실상 유대 피난민들)를 만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고린도에 왔다 할지라도 바울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양식을 위해서 장막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아굴라 부부를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아굴라와 브리스 길라(바울은 그들은 로마서 16:3에서 동역자라고 말하고 있다. )를 찾았다.

그들은 그들의 집을 오픈하고 바울을 맞아 들였다. 그래서 그들의 집이 교회가 되곤 했다 (고전 16:19) 바울의 사역에 아주 핵심적인 사람들이었다. 수리아로 갈 때 함께 떠남(18절)

이후 15년간 바울과 함께 했다. 부부의 헌신이 아름답다. 성경에 6번이나 언급될 정도로 바울에겐 특별한 존재였다. (나의 동역자, 나를 위하여 목숨이라도 내어 놓았다-롬 6:4) 사역자에게 각별했다. 영적으로 도움 받고 육적으로 섬기는 관계였다. 사역자와 긴장관계를 지속하면 사역자는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는 계기가 되지만 그런 자세의 성도는 사실 피곤하고 영이 메마르기 쉽다. 말씀의 역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협력해서 이루어야 할 과제이다. 긴장관계로 은사와 시간을 허비할 수 없는 것이다.

나중에 율법학자 구약에 능통한 아볼로에게 복음을 정확히 전달한 말씀 사역자로 성장하게 된다.

행 18: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 시작하거늘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바울이 천막(가죽 가공업-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함께 이야기 하는 시간이 많은 것으로 추청) 만드는 생업을 한 것은 사역비 충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 전도할 사람을 만나기 위한(접촉점, 이슬람권 전도는 전문 직업인이 유효) 수단으로서 일시적으로 한 것이다. 이것을 두고 사역자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성경적 근거는 되지 않는다. 바울은 사역비를 대부분 후원을 받아 했다. 실라와 디모데가 온 후에는 말씀 전파에만 전념했고 천막 만드는 일을 계속했다는 성경적 근거는 없다.) 고전 9장에서는 영적인 씨를 뿌린 자는 육적인 것을 거두는 것이 마땅하다고도 했다.

실라와 디모데: 실라는 빌립보에서 디모데는 데살로니가에서 왔다. 적절한 때에 하나님이 보내 주셨다. (재정 후원금을 전달해 주려고 왔고-두 번이나- 각 지역에서 교회가 잘 성장하고 있다는 기쁨의 소식을 들고 왔다. 이런 동역자들의 만남을 통해 바울은 더욱 더 자신의 복음 전파 사역에 힘을 얻게 된다.) 이런 재정적인 후원(동역)으로 인해 바울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devoted to himself completely to the word 5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에서 왔을 때,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간증하면서 설교에만 전념했다. NIV) 붙들릴 수 있게 된다.

 

2. 두 번째는 하나님 말씀에만 붙잡힌 사역자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4,5절)

1) 5절: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말씀에만 붙잡혀있는 상태)

2) 4절: 강론(reason): 질문하고 답변하는 것-지속적 상태)

3) 4절: 권면 (persuade): 설득-지속적인 상태

4) 5절: 증언: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 교회 성장에 중요하다.

5) 복음 전하는 곳에 반드시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6-비방했다.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전해야 한다- 9절 (두려워 하지 말고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10절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마 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렇게 지속적으로 하나님 말씀만 전하면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이 반응한다.

3. 세 번째는 말씀에 반응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1) 7절: 회당 가까이 사는 이방인인 디도 유스도가 믿고 (복음 전하는 곳은 우리가 익숙한 곳 부터 시작해야 한다. 바울에게 있어서 회당은 익숙한 장소이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곳 편한 곳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2) 8절: 유대인 회당장인 그리스보가 믿게 되었다.

3) 하나님의 택하심이 있다. (10절)

결론:

우리는 교회를 이루고 있다고 하면서 동역자로서 섬기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백성을 찾고 있는가?를 항상 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