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묵상

투기하지 말라 - 갈라디아서 5장 26절

차작가 2024. 1. 17. 12:57

B. 육체의 일과 (성령)의 일 (5:16-26)

이제까지 은혜와 복음의 진리에 관해서, 그리고 그 진리 안에서 성령의 인도로 사는 삶에 관해서 말했다. 이제부터는 그 삶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래서 오늘의 주제는 “율법적으로 사는 것과 은혜로 사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이다.

5: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이 구절을 헬라어 문장의 구조를 살피면서 헬라어 단어 순서대로 직역하면, “우리가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맙시다. 서로 노엽게 하면서 그리고 서로 투기하지 않으면서.”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몇 개 있다.

 

첫째, 이 구절은 “우리가 .... 구하지 맙시다!”라고 권고하는 문장이라는 점이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포용하면서 자신을 갈라디아 교인들과 일치시키며 ‘우리’라고 부르고 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하지 마십시오!”라고 명령하지 않고, “우리가 이렇게 하지 맙시다!"라고 권고한다. 그러면, 바울이 이렇게 권고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냐하면, “너희들은 .... 이렇게 하지 말라!"라는 금지명령으로 사람의 마음과 습관이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과 포용하는 마음과 염려하는 마음으로 ‘권고’하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우리가 앞으로 그렇게 되지 맙시다!” 또는 “우리가 앞으로 그렇게 변질되지 맙시다!”라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미래에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복음으로 시작했다가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기 쉽고,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다시 육체로 돌아가기 쉬운 것처럼, 성령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걸리기 쉬운 올무가 있으니, 바로 이 ‘헛된 영광’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둘째 포인트는 “헛된 영광”이라는 단어이다. 이것은 참 재미있는 단어다. 이 단어는 헬라어로 ‘케노독소스’(κενόδοξοs) 인데, ‘헛된’ 또는 ‘텅 빈’을 뜻하는 접두어 ‘케노’(κενο) 와 ‘영광’을 뜻하는 단어 ‘독사’(dóξα)가 결합된 형태이다. 그리고 이 단어의 함축 의미는 ‘속이다’, ‘자랑하다’, ‘큰 소리로 떠든다’이다 이 단어의 형태와 의미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이 단어는 ‘속이는 것’, ‘자랑하는 것’, ‘큰 소리로 떠벌리는 것’ 등이 모두 거짓 영광을 구하는 것, 가짜 멋, 과장된 체면과 헛된 위신을 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26절의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맙시다’의 의미를 종합적으로 설명하면,

“우리가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되지 맙시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되지 맙시다. 이것은 모두 우리 스스로를 미화시키고, 우리 스스로를 높이고, 우리 스스로를 과장하는 행위입니다. 우리 스스로 잘난척하는 사람들로 변하지 맙시다. 우리 이렇게 변질되지 맙시다.” 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셋째 포인트는 “서로 노엽게 하면서 그리고 서로 투기하지 않으면서”이다. 이것은 앞 문장 “우리가 스스로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맙시다”에 대한 분사구이다. 즉 헛된 영광을 구하는 행위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서로 노엽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서로 투기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번역하면 알기 쉽다. “우리가 서로 노엽게 하면서 그리고 서로 투기하면서 스스로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맙시다!”

 

“노엽게 한다"라는 동사는 ‘앞’을 뜻하는 전치사 ‘프로’(προ)와 ‘부른다’를 뜻하는 동사 ‘칼레오'(καλέω) 가 결합된 단어이다. 이 단어의 의미는 ‘앞에서 누구를 크게 부른다’, ‘누구를 앞으로 나오라고 부른다’이다. 조교 또는 교관이 뒤에 앉아 있는 병사에게 “자네, 이 앞으로 나와!”라고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래서 이 단어는, ‘강제적으로 불러낸다’, ‘강요한다’, ‘도전한다’, ‘자극한다’를 뜻하기도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스스로 강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여러 면에서 ‘강한’ 사람은 다른 약한 사람을 ‘자극하거나,’ ‘무시하거나’, ‘강요하면서’ 화나게 만들기 쉽다. “너는 왜? 이런 것도 못하니?” “너는 이렇게 쉬운 것 이렇게 기본적인 것을 왜 몰라? 너는 이것도 못해?” 이런 식이다. 그래서 “서로 노엽게 하지 말자!"라는 스스로를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는 권고이다.

 

한편 ‘서로 투기한다’는 ‘부러워한다’, ‘시기한다’를 뜻하는 동사이다. 이것은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걸리기 쉬운 올무이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강하고, 그래서 내가 그보다 약하다고 생각할 때, 그 사람을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투기하고, 모함하고,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율법적 신앙, 율법적 사고, 율법적 윤리의 대표적인 단면이다. 율법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옳거나 강하다고 생각하게 되면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비판하거나, 강요하거나, 억압하게 된다. 한편 율법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이 사람들이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을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그래서, 투기하고, 그래서, 더 비판하고, 그래서 모함하고, 그래서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헛된 영광을 구하는 자세’이다. 스스로를 ‘자랑하고’, 스스로를 ‘떠벌리고’, 그래서 스스로 탐욕이라는 우물에 빠져 있는 현상이다.

 

적용:

내가 강하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을 얕보거나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내가 강하고 옳다는 것을 자랑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칭찬해 주기를 원하는 욕망 때문이다. 여기에는 나의 의, 즉 자기의가 숨어있다.

그리고 만약 나의 믿음이 강하다고 생각한다면 약한 사람을 무시하거나 정죄해서도 안된다. 그들의 생활, 윤리, 습관, 취미, 무엇이든지, 강요하거나 자극해선 안된다. 그것은 우리의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이다.

또 반대로 나의 믿음이 약하다고 생각하면, 강한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해서도 안된다. 그것도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이다.

5장 26절을 다시 읽어 보면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이것이 율법적 사고, 율법적 감정, 율법적 언어생활이다. 한 마디로 이것을 율법적 윤리이다. 이것이 성도의 삶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