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묵상

손바닥 묵상 2 - 민수기 21장에서 30장 묵상

차작가 2024. 2. 23. 12:51

발람의 저주에 대해선 설교를 통해 자주 듣는 말씀이기도 하고 동화 같은 이야기로 인해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는 말씀이다.

나도 지난번 묵상 편에서 한번 적용했던 적이 있다.

하나님 말씀은 읽으면 읽을수록 또 다른 적용 포인트를 찾게 하시니 정말 감사하고 재밌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이끌어 내신 것은 고대 근동 지역의 큰 화제였다.

모압과 암몬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허락하지 않으시므로

에돔을 통해 지나가길 원하셨다.

그런데 에돔이 거절해서 할 수 없이 돌아가게 되는 말씀이 있다.

그때 모세가 가데스에서 애돔 왕에게 사신을 보내는데

"우리가 당한 모든 고난을 당신도 아시거니와"라는 말에서 그 당시 출애굽 사건이 화제거리였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은 거절했고 때문에 호르마를 점령을 하고 이스라엘이 모압 경계에 까지 진을 치게 된다.

그때 모압왕 발락이 발람에 청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게 하는 사건이 이어서 나온다.

그러나 3번 다 축복을 하자 발락이 발람에게 하는 구절을 읽으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23:27 발락이 발람에게 또 이르되 오라 내가 너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리니 네가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기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 하고

발람이 세 번이나 하나님이 하시지 않은 저주를 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래로 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지만 발락은 듣질 않는다.

이산 저산 옮겨 다시며 제단을 쌓고 수송아지 수양을 번제로 드려도 다 헛일인 것이다.

그런데 "네가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 하기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 이 말씀을 읽는데

"혹시"라는 말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거는 기대이다.

만약 발락이 그들을 저주할 수 없다면 하나님이 "혹시" 나를 축복하시거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셔서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피할 수 있도록 기도해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만나길 기도하면 이방인도 구원하시고 복을 주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그리고 처음부터 하나님은 모압과의 전쟁을 할 생각도 없으셨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이 순간 그들의 저주가 아니라 자신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발람을 통해 하나님은 예언을 하게 하시는데 가장 마지막 구절이 하나님이 주시는 발락과 발람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다.

24:9 꿇어 앉고 누움이 수사자와 같고 암사자와도 같으니 일으킬 자 누구이랴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주시고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내리신다고 말씀하시며

발락과 그와 함께 있는 고관들에게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발락은 발람에게 "달아나라!" 하며 경고하고 산을 내려온다.

즉 너 저주 안 했으니 죽이겠다는 것이다.

인생의 기회는 3번 있다! 그런 말을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는 죽을 때까지 인 것 같다.

이곳에서 3번의 저주를 3번의 축복으로 바꾸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발락에게 말씀으로 축복과 저주는 자신의 권한이니

너도 축복하면 너를 축복하겠다고 여지를 주시는 걸 보며 그런 마음이 들었다.

오늘 하나님이 발락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여지를 주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만났다.

내가 만난 축복의 하나님을 우리 엄마도 만났을 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제 치매 판정받고 힘드실 텐데..

내가 전한 복음이 위기 때 혹 생각이 나면 아멘! 하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아 구원의 축복을 받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