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151

조엔 부탁이야

조엔 너에게 요술 붓을 줄게 우선 너의 눈을 슬어보렴 이젠 보이니? 내 마음이 ​ 그럼 내 심장을 슬어보렴 용기를 가져보렴 이제 우리 용서하자 너의 억울함이 서러움이 세상 끝나는 날엔 아무것도 아니란다 너의 상처 때문에 너의 심장이 죽을 순 없잖니 ​ 조엔 사랑하는 나의 조엔 사랑하는 심장을 가지렴 그리고 한 시간 전 기억을 잃어버리는 부모님의 머리를 슬어드리렴 또 너를 아프게 한 이들의 입을 슬어주렴 세상 끝은 다가오고 그 끝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단다.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건 내 심장에만 남는 거란다. ​ 그러니 아무것도 남지 않는 억울함도 서러움도 슬어버리렴 오로지 남길 건 용서뿐이란다 사랑하는 나의 조엔 남길 것은 그것뿐이란다 부탁이야 나의 조엔

나의 시 2024.02.13

에덴을 바라며

마른 낮에 천둥 번개 컴컴한 비바람 예고 없이 끝날 기미도 없는 태풍이 몰아치고 내겐 잠시 피할 처마도 보이지 않는 서러운 인생 ​ 이름 없는 들꽃은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언제쯤 천둥도 번개도 이 끝날 것 같지 않은 태풍도 가져가실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들꽃보다 하찮은 먼지이기에 나를 저 먼 곳으로 날려버리시려나 ​ 그래도 신실하다 하시니 날려도 저 에덴 동쪽이려나 끝나지 않는 사나운 인생이 나를 삼켜 버릴지라도 나의 끝은 에덴동산 당신의 품이기를...

나의 시 2024.02.13

하늘

고개만 들면 보이는 가깝고도 먼 하늘 나무도 꽃도 비도 눈도 계절도 안고 덮고 있는 하늘 ​ 사나운 칼바람과 천둥번개도 안으면 그만인 하늘 ​ 수많은 변화에도 고개 들면 언제나 하늘은 하늘 ​ 누군가에겐 소원도 들어주는 하늘 간절한 소망도 슬픔도 그리움도 다 들어주는 하늘 ​ 하늘을 향해 나뭇가지로 장난스레 찔러봐도 꿈적도 않는 하늘은 하늘

나의 시 2024.02.13

으름장 봄

지난봄, 가기 싫어하는 겨울과 성급한 여름 틈에 속상한 봄은 새해가 되자마자 한 겨울이 무색할 만큼 1월에 봄비를 내려주고 ​ 포근한 바람은 한겨울을 조롱하듯 불고 따뜻한 햇볕과 심심치 않게 간질거리는 겨우내 봄비는 자기를 잊지 말라고 한다. ​ 3월은 내 것이니 다시는 내 것을 뺏지도 말고 나를 기억해 달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 뒤끝 있는 봄의 생떼가 꼭 나를 닮았다. 가만히 있다가 알 수 없는 타이밍에 웬 생떼를 부리는 것이 꼭 나다. ​

나의 시 2024.02.13

외면하는 빛

세상은 거짓말 같은 일들로 널브러져 회복될 것 같지 않은 상함으로 덮어버렸다. 거적대기 같은 더러움은 진실을 가려 더 이상 희망이라곤 찾은 수 없고 빛은 어둠을 밝힌다는데 아무리 돌아봐도 찾을 수 없는 빛은 그 어디에도 없고 빛을 품은 사람은 눈을 감고 어둠 속에 서 있으니 잠자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 빛이여 눈을 떠 일어나라 역겨운 오물 속에서 빛을 발하라

나의 시 2024.02.13

어미나무

푸르고 풍성한 잎으로 옷 입은 너는 반짝이는 햇살에 화려한 보석처럼 빛났고 때로는 치맛자락 잎으로 살랑살랑 춤도 추고 울긋불긋 단풍잎으로 나를 낭만에 젖게도 했는데 화려함을 모두 벗은 이 겨울엔 너를 잠시 잊었단다. ​ 너 아래 가면 항상 들려왔던 지저귀는 새소리 생각에 오랜만에 너를 바라보니 잎이 지고 가지만 남았는 줄 알았는데 지저귀는 새들의 둥지도 있고 커다란 벌집도 남아있구나 ​ 너는 거저 춤추는 나무인 줄 알았는데 남몰래 수많은 벌들과 새들의 집이 되어주고 보호자가 되어주었구나 일 년 동안 품었다가 보내는 어미였구나 남 몰래 수고한 너를 이제서야 알았다. 수고했다 어미야 수고했다 친구야

나의 시 2024.02.11

나를 찾지 말아요

나를 찾지 말아요 나를 잊어주세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일들이 아니었어요 문 앞에 놓고 간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나의 순결한 헌신과 청춘이 애달파 마음을 밀어냅니다. 보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는 없겠어요? 그러나 지금은 밀어내려 합니다. 제발 찾지 말아요 나를 잊어주세요. 2019년 11월 25일 (문 앞에 놓여있는 전 교인이 놓고 간 과일들을 보며)

나의 시 2024.02.11

공평한 햇살이었으면

이왕 쏟아지는 햇살이라면 나에게만 따뜻한 햇살이지 말고 온 세상 어두운 곳에도 반가운 따뜻한 볕이었으면 좋겠다. ​ 나만 보기 아까운 이 아름다움이 너무 힘겨워 쳐다볼 힘도 없고 오히려 이 볕이 슬픔으로 가려지고 울컥하는 마음에 삼켜져 더 이상 감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 잠시, 이 순간은 따뜻했으면 좋겠다. 이왕 내리는 햇볕이니깐 ​ 2019년 9월 21일

나의 시 2024.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