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153

다 나쁜 것만은 아니야

햇살이 좋아 나가보면 쌀쌀한 공기에 몸이 움츠려들고 이럴 땐 이렇게 문을 열어두고 바라보는 것도 좋은 생각이야. 뉴스엔 반가운 소식도 없고 암울한 마음뿐이지만 가끔은 모두 집에서 바쁠 필요도 없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는 것도 좋은 생각이지 바쁘지 않은 일상이 바쁘지 않은 마음이 되고 그렇게 평안을 지킨다면 하나님의 마음도 알아가겠지 이참에 그동안 미루었던 청소도 하고 아이들과 동네 한 바퀴 자전거도 타고 오랜만에 아내를 위해 밥도 지어보면 다 나쁘지만 않은 혼란이 되니 다 나쁜 것만은 아니야.

나의 시 2024.02.14

조엔 부탁이야

조엔 너에게 요술 붓을 줄게 우선 너의 눈을 슬어보렴 이젠 보이니? 내 마음이 ​ 그럼 내 심장을 슬어보렴 용기를 가져보렴 이제 우리 용서하자 너의 억울함이 서러움이 세상 끝나는 날엔 아무것도 아니란다 너의 상처 때문에 너의 심장이 죽을 순 없잖니 ​ 조엔 사랑하는 나의 조엔 사랑하는 심장을 가지렴 그리고 한 시간 전 기억을 잃어버리는 부모님의 머리를 슬어드리렴 또 너를 아프게 한 이들의 입을 슬어주렴 세상 끝은 다가오고 그 끝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단다.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건 내 심장에만 남는 거란다. ​ 그러니 아무것도 남지 않는 억울함도 서러움도 슬어버리렴 오로지 남길 건 용서뿐이란다 사랑하는 나의 조엔 남길 것은 그것뿐이란다 부탁이야 나의 조엔

나의 시 2024.02.13

에덴을 바라며

마른 낮에 천둥 번개 컴컴한 비바람 예고 없이 끝날 기미도 없는 태풍이 몰아치고 내겐 잠시 피할 처마도 보이지 않는 서러운 인생 ​ 이름 없는 들꽃은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언제쯤 천둥도 번개도 이 끝날 것 같지 않은 태풍도 가져가실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들꽃보다 하찮은 먼지이기에 나를 저 먼 곳으로 날려버리시려나 ​ 그래도 신실하다 하시니 날려도 저 에덴 동쪽이려나 끝나지 않는 사나운 인생이 나를 삼켜 버릴지라도 나의 끝은 에덴동산 당신의 품이기를...

나의 시 2024.02.13

하늘

고개만 들면 보이는 가깝고도 먼 하늘 나무도 꽃도 비도 눈도 계절도 안고 덮고 있는 하늘 ​ 사나운 칼바람과 천둥번개도 안으면 그만인 하늘 ​ 수많은 변화에도 고개 들면 언제나 하늘은 하늘 ​ 누군가에겐 소원도 들어주는 하늘 간절한 소망도 슬픔도 그리움도 다 들어주는 하늘 ​ 하늘을 향해 나뭇가지로 장난스레 찔러봐도 꿈적도 않는 하늘은 하늘

나의 시 2024.02.13

으름장 봄

지난봄, 가기 싫어하는 겨울과 성급한 여름 틈에 속상한 봄은 새해가 되자마자 한 겨울이 무색할 만큼 1월에 봄비를 내려주고 ​ 포근한 바람은 한겨울을 조롱하듯 불고 따뜻한 햇볕과 심심치 않게 간질거리는 겨우내 봄비는 자기를 잊지 말라고 한다. ​ 3월은 내 것이니 다시는 내 것을 뺏지도 말고 나를 기억해 달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 뒤끝 있는 봄의 생떼가 꼭 나를 닮았다. 가만히 있다가 알 수 없는 타이밍에 웬 생떼를 부리는 것이 꼭 나다. ​

나의 시 2024.02.13

외면하는 빛

세상은 거짓말 같은 일들로 널브러져 회복될 것 같지 않은 상함으로 덮어버렸다. 거적대기 같은 더러움은 진실을 가려 더 이상 희망이라곤 찾은 수 없고 빛은 어둠을 밝힌다는데 아무리 돌아봐도 찾을 수 없는 빛은 그 어디에도 없고 빛을 품은 사람은 눈을 감고 어둠 속에 서 있으니 잠자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 빛이여 눈을 떠 일어나라 역겨운 오물 속에서 빛을 발하라

나의 시 2024.02.13

어미나무

푸르고 풍성한 잎으로 옷 입은 너는 반짝이는 햇살에 화려한 보석처럼 빛났고 때로는 치맛자락 잎으로 살랑살랑 춤도 추고 울긋불긋 단풍잎으로 나를 낭만에 젖게도 했는데 화려함을 모두 벗은 이 겨울엔 너를 잠시 잊었단다. ​ 너 아래 가면 항상 들려왔던 지저귀는 새소리 생각에 오랜만에 너를 바라보니 잎이 지고 가지만 남았는 줄 알았는데 지저귀는 새들의 둥지도 있고 커다란 벌집도 남아있구나 ​ 너는 거저 춤추는 나무인 줄 알았는데 남몰래 수많은 벌들과 새들의 집이 되어주고 보호자가 되어주었구나 일 년 동안 품었다가 보내는 어미였구나 남 몰래 수고한 너를 이제서야 알았다. 수고했다 어미야 수고했다 친구야

나의 시 2024.02.11

나를 찾지 말아요

나를 찾지 말아요 나를 잊어주세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일들이 아니었어요 문 앞에 놓고 간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나의 순결한 헌신과 청춘이 애달파 마음을 밀어냅니다. 보고 싶은 마음이 나에게는 없겠어요? 그러나 지금은 밀어내려 합니다. 제발 찾지 말아요 나를 잊어주세요. 2019년 11월 25일 (문 앞에 놓여있는 전 교인이 놓고 간 과일들을 보며)

나의 시 2024.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