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바울은 21장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배를 탄다.
제자들과 함께 7일 동안 머물 때에 그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말류하고
빌립의 집에 머물 때에도 빌립의 딸 넷이 예언하길 아가보라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그들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손발을 묶고 말하기를
11절에 보면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라고 예언을 했다.
넷 딸들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게 13절과 같이 대답을 한다.
21: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바울이 그녀들의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며 말을 그친다.
오늘은 21장에서 25잘까지 묵상을 하는데 바울은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잡히고 감옥에 가서
22장에 나오듯 자신의 간증을 한다.
그리고 22장 15절과 같이 고백한다.
22: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그러나 유대인들은
22:22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애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없애 버리자"라고 소리를 지른다.
마치 예수님이 빌리도 앞에 섰을 때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소리 지르는 것을 연상케 한다.
그 가운데 분쟁이 일자 결국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길까 해서 군인들을 명령하여 그 무리 가운데 빼앗아 영내로 들어가게 한다.
그날 밤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길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이 밤.. 바울의 마음을 상강조차 할 수가 없다..
성경을 묵상하며 눈물이 많이 났다...
유대인들은 당을 지어서 바울을 죽이기 전까지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며 동행한 사람들이 40명이나 되었다.
23:21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그들은 바울을 고발하고 바울은 자기의 결백을 주장하고 감옥에 갇히고 바울은 자기의 로마 시민권을 이용해서 가이사에게 상소를 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용하셔서 복음을 전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다시 21장으로 돌아오면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 때에 이미 그가 어떻게 죽임을 당할 것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20:38절에 보면
20: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과 헤어질 때 "다시는 나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라고 자기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교인들은 크게 울고 바울을 안고 입을 맞추며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제자들에게도 성령의 감동이 임하여 바울이 위험에 처할 것을 알게 하셨고
빌립의 넷 딸에게도 예언을 통해 알게 하셨다.
즉, 동일하신 성령님은 바울의 죽음에 대해 모두 알리셨다.
그러나 제자들과 빌립의 딸들은 부분적으로 알았다.
바울의 죽음을 성령님은 알리셨지만 바울이 죽음을 통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전파되는 것은 그들에게는 비밀이었다.
그 권함을 받지 않자 그들은 한 성령님으로부터 나온 예언이기에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받아들였다.
나는 이 예언에서 이 장면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예언을 할 때 같은 예언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부분적으로 알려 주시고
또 그 예언의 당사자에게는 그 이유까지 전체를 알려 주신다는 것이다.
즉 당사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예언은 없다는 점이다.
성령님은 그 일이 왜 이루어지는지 반드시 알려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어떠한 예언을 한다면 그게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령님은 절대로 본인에게 이루어질 일들에 관한 일들은 본인에게 반드시 알려 주시고 비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면 성령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시는 것을 느꼈다.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반드시 이유가 있고 성령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성령님은 완벽한 분이시기에 모호한 방법으로 절대 일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묵상이었다.
'매일의 말씀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마서 1장에서 5장 묵상 (0) | 2023.10.11 |
---|---|
사도행전 26장에서 28장 묵상 (0) | 2023.10.10 |
사도행전 16장에서 20장 묵상 (0) | 2023.10.10 |
사도행전 11장에서 15장 묵상 (0) | 2023.10.10 |
사도행전 6장에서 10장 묵상 (0) | 2023.10.10 |